지나간 시간 위에 새겨진 빗살무늬
우리의 삶에는 어떤 패턴이 남는다. 그것은 감정일 수도 있고 기억일 수도 있으며, 물리적인 장소나 사물에 새겨진 흔적일 수도 있다. ‘빗살무늬’는 단지 미적 문양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하고, 촉감으로 전달되는 기억의 파편이다.
빗살무늬가 나타내는 것은 시간의 층위다. 마치 토기 위에 남겨진 무늬처럼, 한 줄 한 줄은 손끝을 타고 흐른 시간을 품는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그 무늬는 우연이 아니라 의지이며, 의식적으로 남긴 흔적이다. 지나감은 흔히 망각되기 쉽지만, 빗살무늬는 그것을 붙잡는다. 사라진 순간들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 우리는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게 된다.
빗살무늬는 또한 촉각적이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 패턴은 단순히 시각적 요소를 넘어선다. 우리가 어릴 적 만졌던 조약돌, 벽에 난 금, 혹은 오래된 책장의 결처럼, 그것은 시간을 손끝으로 읽는 방식이다. 바로 그 순간, 지나감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감각의 축적이라는 본질로 돌아온다.
촉감으로 되살아나는 잊힌 감정들
촉감은 기억의 가장 원초적인 통로다. 냄새처럼 즉각적이진 않지만, 손끝에 닿는 어떤 감각은 오래전 기억을 천천히 되살린다. 빗살무늬는 그런 감각의 매개다. 손으로 쓸어보면, 그것은 단지 거친 표면이 아니라 한 시절의 공기와 기운을 머금고 있다.
누군가는 오래된 그릇의 표면에서 어린 시절을 느낀다. 누군가는 낡은 나무 울타리에서 첫사랑을 떠올린다. 이처럼 촉감은 지나감의 가장 충실한 증언자다. 시각은 쉽게 속일 수 있고, 청각은 사라지지만, 촉감은 잔존한다. 그리고 빗살무늬는 그 촉감을 가장 견고하게 담는 형식이다.
손끝으로 읽는 과거는 시계나 달력보다 더 정직하다. 그것은 실체 없는 기억을 실제로 변환시키며, 삶을 구성하는 무형의 감정들을 다시금 손 안에 쥐게 한다. 우리가 촉감을 통해 접하는 지나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생생한 재경험이다.
패턴의 연속성과 인간의 존재성
인간은 반복을 통해 안정을 찾는다. 그것은 문양에서도 마찬가지다. 빗살무늬는 단순한 선의 반복이지만, 그 반복 속에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 반영된다. 계획된 반복은 안정을, 불규칙한 반복은 감정을, 그리고 의도된 흔적은 의식을 드러낸다.
빗살무늬는 고대의 토기에서도, 현대의 섬유나 금속에서도 등장한다. 문화가 다르고 시대가 달라도 이 패턴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왜일까? 그것은 인간이 ‘지나감’을 단순한 소멸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나간 것을 남기는 방식으로써 무늬를 새기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 줄 한 줄 새겨지는 빗살무늬는 곧 인간의 서사다. 촉감으로 남는 그 패턴은 말 없는 언어이며,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물리적인 증표다. 무늬는 말을 하지 않지만, 무늬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것이 시간의 감각이자 존재의 의식이다.
사라짐과 남겨짐의 간극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중 일부는 남겨진다. 그리고 그 남겨진 것이 빗살무늬처럼, 형태로 고정된 채 새로운 세대로 이어진다. 촉감은 그것을 계승하게 한다. 시각이 전하지 못하는 정보를 손끝이 대신한다.
시간은 흐르지만, 흔적은 고인다. 지나간 감정, 지나간 생각, 지나간 사건들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그것을 붙잡는 노력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 노력 중 하나가 바로 무늬를 새기는 행위다. 기억은 연약하지만, 촉감은 견고하다.
그래서 빗살무늬는 ‘지나감’과 ‘남겨짐’ 사이의 간극을 채운다. 그리고 그 간극을 통해 우리는 존재의 연속성을 체감한다. 모든 것은 사라질지라도, 촉감은 남는다. 그리고 그 촉감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감각의 본질이다.
무늬를 통한 정서의 구조화
무늬는 단지 미적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정서를 구조화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혼란한 감정, 설명되지 않는 아픔, 애매한 기억은 무늬 속에 정리된다. 빗살무늬는 반복과 대칭을 통해 정서의 질서를 부여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수많은 감정은 형태가 없다. 그것들은 흩어지며 소멸되고, 때로는 감당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정한 틀 안에 담길 때, 인간은 그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고 다루게 된다. 마치 일기를 쓰듯, 혹은 무언가를 접듯, 빗살무늬는 감정의 접힘이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 규칙적인 흐름은 마음의 혼란을 가라앉힌다. 촉감으로 구조화된 정서는 단지 표현이 아니라 치유의 방식이기도 하다. 지나감은 단지 지나간 것이 아니며, 그것을 붙잡고 구성해낸 무늬 속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간다.
기억의 표면을 긁어내는 촉감의 힘
사람의 기억은 단단한 금고가 아니다. 그것은 때로 너무 쉽게 닫히고, 때로 너무 느슨하게 열려 있다. 하지만 어떤 감각, 특히 촉감은 그 표면을 긁어내듯 기억을 끄집어낸다. 오래전 가죽 소파의 질감, 노끈의 거침, 벽지의 주름 하나까지도 그 자체가 과거다.
빗살무늬는 그런 촉각의 트리거다. 그것은 감정의 단추를 누른다. 손끝으로 그 무늬를 느낄 때, 우리는 알 수 없는 안정을 경험한다. 그것이 추억 때문인지, 무의식 속의 구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기억은 때로 언어보다 촉감에 더 민감하다. 한 번의 손끝이 수많은 말보다 더 많은 기억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 촉감이 무늬로 고정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지나감을 소유하게 된다.
마무리
모든 것은 흐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이 어딘가에 무늬가 있고, 그 무늬는 시간의 잔여이자 감각의 귀환이다. 빗살무늬는 감정을 담는 그릇이며, 촉감은 그것을 읽는 손끝의 문장이다.
지나감은 단지 소멸이 아니라 귀환이다. 그것은 촉감이라는 경로를 통해 다시 나타나며, 무늬라는 형식을 통해 정제된다. 우리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손끝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살아간다. 그것이 진정한 남김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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