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낯설음 속에 스며든 공허의 감정

그해의 기억 속에서 피어난 낯설음의 실체

인간은 시간을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해가 같은 무게로 남지 않는다. 어떤 해는 특별히 무겁고, 또 어떤 해는 특별히 낯설다. “그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가슴 한켠에 무겁게 내려앉는 감정이 있다. 그해는 어쩌면 상실, 혹은 새로운 시작, 혹은 설명되지 않는 공허감으로 가득 찼던 시기일지도 모른다.

낯설음은 단순히 공간이나 사람,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가장 깊은 낯설음은 익숙했던 것들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을 때 밀려온다. 그해의 익숙함이 무너지고 난 후, 스며드는 감정이 바로 공허다.

감정의 낙차 속에서 드러난 그해의 풍경

누군가에게는 이별의 해였고, 누군가에게는 꿈이 좌절된 해였다. 익숙한 도시가 낯설게 보이고, 하루하루가 텅 빈 반복으로 느껴지던 시기. 어떤 이들은 그해의 사진 한 장조차 마주하지 못하고 그 기억을 피했다. 하지만 낯설음이란 결국 그 자리에 멈춰선 감정의 잔해다.

그해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낯설음은 변화가 아닌 정지에서 온다는 것을. 그대로인 것처럼 보여도 이미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던 그해. 그로 인해 공허는 서서히 우리 안에 자리를 잡았다.


공허는 어떻게 일상 속을 잠식하는가

공허는 갑작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아주 조용히 일상 속을 잠식해 들어온다. 처음에는 무기력함으로, 그 다음은 무의미함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감각으로 확산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미소를 잃었고, 의미 없는 하루를 버티는 것으로 시간을 채웠다. 책을 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음악을 틀어도 감흥이 없다. 공허는 그토록 조용하지만 위협적인 감정이다.

내면을 집어삼킨 무의미함의 정체

공허함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아니라 내부의 감각 결핍에서 기인한다. 하고자 했던 일들, 만나고자 했던 사람들, 이루고 싶었던 꿈들이 어느 순간 무의미해지면, 삶 전체가 멈춘 듯한 착각을 준다. 이는 단순한 우울이 아닌, 본질적인 ‘상실’에 가까운 감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해’라는 시간 속에서만 자주 목격된다. 이유 없이 마음이 붕 뜨고, 아무것도 이끌지 못하는 상태. 바로 그것이 공허의 시작이다.


낯선 감정은 왜 유독 그해에만 찾아왔을까

사람은 변화에 적응하는 존재이지만, 변화가 예고 없이 다가오면 낯설음이라는 감정으로 충돌한다. 특히 누군가를 떠나보냈거나, 익숙했던 장소를 벗어났거나, 일상의 루틴이 깨진 순간에 그 감정은 증폭된다.

그해에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예상하지 못한 변화, 선택하지 못한 현실,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상실. 이러한 사건들은 하나하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낯설음을 더했다.

심리적 외상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지연

낯설음은 때로 외상적이다. 감정이 처리되지 않은 채 내면에 축적되면, 일상생활조차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의미 부여가 사라진 시간 속에서는 감정의 통로조차 닫힌다.

그해에 겪은 낯선 감정들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단지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충격이 지속된 결과다.


감정의 언어가 사라진 시대, 공허와 낯설음은 일상화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무덤덤한 얼굴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숙함’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감정이 사라진 자리엔 반드시 공허가 들어온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느끼지 않았다. 너무 오래 참고, 말하지 않고, 이해받지 못한 채로 지나왔다. 그러는 사이 공허는 마음속에 뿌리내렸고, 낯설음은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남긴 감정의 공백

특히 전 세계적으로 겪은 단절의 시간들, 타인과의 거리, 관계의 불안정함은 감정의 언어를 더욱 무디게 만들었다. 그해가 유독 낯설고 공허했던 이유는 단순히 외부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서 감정의 통로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해를 기억하는 방법: 감정을 복원하라

낯설음과 공허를 마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피가 아니라 ‘기억의 복원’이다. 우리는 잊으려 했던 감정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쓰라림이 있어도, 고통이 있어도 그 감정들을 되살려야 한다.

그해는 지나갔지만, 그해의 감정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다. 우리는 그 감정을 붙잡아야 한다.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감정을 채워 넣을 수 있어야 한다. 공허를 이기기 위해서는 감정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낯설음을 수용해야 한다.

글쓰기와 감정 일기: 감정 회복의 첫걸음

글쓰기는 강력한 감정 회복 도구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특히 일기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간은 감정을 되찾는 데 효과적이다.

그해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순간, 낯설음은 추억이 되고 공허는 통찰로 바뀐다.


낯설음과 공허를 예술로 치유하다

예술은 때로 말보다 감정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 그림, 음악, 무용, 사진 등은 감정을 시각화하고 외부로 분출시킬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그해의 공허를 미디어 아트로 표현하거나, 낯설음을 테마로 한 전시를 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감정은 억제해야 할 것이 아니라 다뤄야 할 것이다. 특히 예술은 그 감정들을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감정 전시: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 만들기

최근에는 감정을 전시의 주제로 다루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해”, “낯설음”, “공허”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이 모여 하나의 감정 아카이브를 형성한다. 이런 공간은 단순한 감상의 장을 넘어, 감정을 공유하고 치유받는 심리적 회복의 장소가 된다.


결론

공허와 낯설음은 피하고 싶지만, 결국 마주해야 하는 감정이다. 그해를 지나오며 우리는 모두 조금씩 부서졌고, 동시에 단단해졌다. 상실의 경험이 우리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나를 마주했다.

결국 그해의 공허는 우리를 다시 만들었고, 낯설음은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다. 이 모든 감정들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그해의 기록은 곧 나의 변화와 성장을 증명하는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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